책 요약/인문사회도서 요약

책 요약: 일제의 흔적을 걷다 / 정명섭 / 더난출판

모닥불 책읽기 2025. 1. 24. 16:24
반응형

 

' 일제의 흔적을 걷다'의 일부를 요약한 글입니다. (참고: 북코스모스)

 

용산의 역사적 배경

  • 용산 미군기지는 일본과 미국, 그리고 한국의 역사적 교차점에 위치한 장소이다.
  • 용산이라는 지명은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역사적으로 중요한 배후지로 기능하였다.
  • 이 지역은 한성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한강을 통해 곡식 저장소가 형성되었다.
  • 구한말의 개항 이후, 외부인들이 용산을 통해 한성으로 들어오는 최적의 장소로 인식하게 되었다.

용산의 근대화와 일본의 점령

  • 1884년, 조선 정부는 일본의 요구에 따라 용산을 개항장으로 지정하였다.
  • 1899년에는 용산역이 세워지고, 1900년에는 경인선이 완공되었다.
  • 이러한 근대화의 이면에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심이 자리하고 있었다.
  •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해 용산을 점거하고, 이후에도 그 지역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일본의 군사적 기반 구축

  • 일본은 용산에 철도역 병영, 보급창을 설치하여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 이 지역은 한반도와 대륙으로의 진출에 있어 요충지로 판단되었다.
  • 일본은 제20사단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설치하여 조선을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한 기반을 다졌다.
  • 용산은 일본의 대륙 침략 시 중간 거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미군의 점유와 현재 상황

  • 1945년, 일본의 패망 후 미군이 용산을 차지하게 되었다.
  • 미군은 일본군이 사용하던 기지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만 반환되었다.
  • 용산 기지 주변에는 도로 전철역이 들어서면서 번화가가 조성되었으나, 여전히 많은 지역은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 2013년에 발표된 기사에 따르면, 용산 기지 내에는 132동의 일본군 관련 건축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군의 시설과 유산

  • 일본은 용산에 총독관저와 다양한 시설을 집중적으로 건설하였다.
  • 기지 건설은 1913년에 1단계가 종료되었고, 1915년부터 2단계 공사가 진행되었다.
  • 일본군의 흔적은 용산 곳곳에 남아 있으며, 이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 현재 미군 기지로 사용되고 있는 이 지역은 과거 일본의 군사적 통치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일본군의 기지 건설 과정

  • 일본은 용산에 경리과 임시건축과를 설치하여 기지 건설을 체계적으로 진행하였다.
  • 기지 건설 과정에서 일본군은 바이러스처럼 자신들의 흔적을 남겼다.
  • 주한미군이 사용 중인 야전병원은 본래 조선을 통치하는 총독의 관저가 있던 자리였다.
  • 일본군의 기지 건설은 조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일본군의 통치와 저항

  • 일본은 조선에 주둔하는 군대의 수를 증강하고, 조선주둔군 사령부를 통해 조선을 통치하였다.
  • 조선주둔군 사령관은 일본군 내부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 1930년대에는 일본이 만주와 중국에 대한 침략을 감행하며 조선이 통로 역할을 하였다.
  • 조선의 독립 운동가들은 일본의 수탈에 저항하며 동척과 같은 기관을 공격하였다.

동척과 일본의 식민지 수탈

  •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는 일본이 조선을 경제적으로 수탈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이다.
  • 이 회사는 조선의 토지를 불법적으로 장악하고, 일본인들에게 분양하였다.
  • 농민들은 자신의 땅을 빼앗기고 만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였다.
  • 동척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농민들에게는 수탈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인식되었다.

농민들의 저항과 동척의 수탈

  • 1932년, 전남 무안군의 농민들이 동척에 항의하기 위해 방문하였다.
  • 동척은 농민들의 경작지를 빼앗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 농민들은 동척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였으나, 비참한 상황에 처하였다.
  • 동척의 화려한 출입문은 농민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목포 근대역사관의 전시물

  • 근대역사관은 목포의 옛 모습과 일본의 침략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 목포는 일본이 면화를 가장 많이 수출한 지역으로, 면화 재배의 역사적 의미가 크다.
  • 동척 목포 지점에서 사용된 금고와 기념비가 전시되어 있다.
  • 팔굉일우 비석은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동척 목포 지점에 전시되어 있다.

성산일출봉의 역사적 의미

  •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이다.
  • 일본은 태평양전쟁 말기에 제주도를 요새화하고 자살특공대를 배치하였다.
  • 성산일출봉 해안가에는 일본의 전쟁 흔적이 남아 있다.
  • 동굴 진지는 일본 해군의 자살특공대가 주둔했던 장소로, 강제노역으로 건설되었다.

일본군의 자살특공대와 동굴진지

  • 제45신요부대는 성산일출봉 동굴진지에 배치된 자살특공대이다.
  • 이 부대는 신요를 사용하여 적 함선에 자폭하는 임무를 맡았다.
  • 동굴 진지는 조선인들이 강제노역으로 건설하였으며, 일본의 전쟁 광기를 상징한다.
  • 신요부대는 일본의 항복 소식에 따라 모든 장비를 파기하고 귀환하였다.

요카렌과 위안부의 역사

  • 요카렌은 일본군의 자살특공대원으로, 위안부가 있던 곳으로 외출하였다.
  • 성산읍에는 일본인이 운영하던 위안소가 있었으며, 요카렌들은 그곳을 찾았다.
  • 위안부의 존재는 일본의 전쟁 범죄를 상징하며, 그들의 고통은 여전히 기억되어야 한다.
  • 성산일출봉의 아름다움 뒤에는 아픈 역사와 기억이 존재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