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북코스모스’의 ‘컬러의 말’ 요약본을 읽고 핵심을 간추려 정리한 것입니다.
# 책에 소개된 여러 색깔에 대한 이야기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언어의 색
언어가 색을 규정할까?
1960년대 후반에 등장한 브렌트 베를린과 폴 케이는 그들의 연구에서 두 가지를 주장하였습니다.
(1) 색의 범주는 선천적이다.
(2) 색을 일컫는 언어가 없다면 인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1980년대의 조사를 통해 많은 예외가 드러났습니다. 언어는 정확하게 그런 식으로 ‘발달’되지 않으며 몇몇 언어는 색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분할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는 황록색과 녹색을 구분하는 분명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어에는 연하고 짙은 파란색을 일컫는 단어가 각각 따로 존재합니다. 색의 언어가 까다롭다는 사실은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삼각형과 사각형을 구분할 수 있는 어린이가 분홍색과 빨간색 또는 오렌지색을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양 계열
베이지
베이지는 1920년대 인테리어 디자인을 창시한 엘지 드 울프가 좋아하는 색깔이었습니다. 그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보고 매료되어 ‘베이지색! 나의 색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베이지색은 나서지 않고 안전하지만 너무 칙칙합니다. 베이지색으로 꾸민 임대 공간에 방문하면 금세 질리게 됩니다. 몇 시간 만에 건물 전체가 한데 어우러져 이를 악물고 일궈낸 무해함의 바다처럼 다가옵니다. 집을 파는 비결을 다루는 요즘의 책은 아예 베이지색을 쓰지 말라고도 못 박습니다. 베이지색은 모두가 좋아하리라는 기대를 품지도 않지만, 그저 누구의 기분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선택합니다.
노랑 계열
크롬 옐로
찌는 듯한 1888년의 여름은 반 고흐에게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 아를의 ‘노란 집’에서 영웅인 폴 고갱의 도착을 조바심 내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반 고흐는 아를에 둘이 함께 화가 공동체를 설립하기를 바랐고, 미래를 낙관했습니다.
크롬 옐로는 1762년 시베리아 안쪽의 베레소프 금광에서 발견된 진홍색의 수정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크롬 옐로가 애초부터 안료로 쓰인 건 아닙니다. 공급이 너무 불규칙하고 가격 또한 너무 높았기 때문입니다. 화가와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슬프게도, 크롬 옐로는 시간이 지나며 갈색으로 변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에서 반 고흐의 그림을 수년간 연구한 학자들은 햇볕에 노출된 꽃잎의 크롬 옐로가 심각할 정도로 진하게 변색되었음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의 해바라기는 실제 꽃이 그렇듯 시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렌지 계열
누드
인도의 대통령을 환대하는 국가 정찬의 자리에서 첫 아프리카계 미국인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는 나임 칸이 디자인한 따뜻한 크림과 은색의 가운을 입었습니다. 칸이 뭄바이 태생이었으므로, 가운은 의복을 통한 외교적 시도였습니다. 하지만 소식이 보도되면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연합 통신은 드레스를 ‘살색’이라고 묘사한 반면, 다른 매체에서는 디자이너인 칸의 말을 빌려 ‘은색 반짝 구슬이 달린, 추상적인 꽃무늬의 끈 없는 누드 가운’이라 표현했습니다.
누드는 코르셋, 거들, 팬티스타킹, 브라렛 등의 여성 속옷 색깔로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등장했습니다. 곧 헐벗은 살과 비단처럼 고운 속옷의 관계가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디자이너는 이 경향에 계속 이끌렸고,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초기 ‘겉옷 같은 속옷’의 유행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부색의 다양함은 압도적이며 신기하도록 감동적입니다. ‘누드’가 특정 피부색을 지칭하는 색깔의 이름이 아니라는 점을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색이나 단어 자체가 아닙니다. ‘누드’라는 단어 뒤에 도사리고 있는 자민족중심주의입니다. “누드보다 피부색이 짙은 우리는 반창고부터 팬티스타킹, 브래지어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색의 측면에서 배제되어왔는지 깨닫는다.”라고 스튜어트는 2010년에 쓴 바 있습니다. 물론 변화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누드’가 색상이 아닌 색의 범위임을 압니다. 그리고 세상도 이를 반영할 때가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핑크 계열
핑크라는 단어는 17세기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서 옅은 빨간색을 묘사하는 단어가 최초로 쓰였습니다. 보통 핑크는 소녀, 파랑은 소년을 위한 색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소녀는 핑크, 소년은 파랑이라는 엄격한 분리의 역사는 고작 20세기 중반에 비롯되었습니다. 몇 세대 전만 해도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기 옷에 대한 《뉴욕 타임즈》의 1893년 기사는 ‘언제나 남자애에게 핑크색, 여자애에게 파란색의 옷을 입혀야 한다’고 언급하였습니다.
핑크색은 꽃이나 공주의 드레스만을 위한 색이 아닙니다. 현재 핑크색이 겪는 문제의 일부는 패션의 묵은 성차별주의에 대항하는 페미니즘에서 비롯됐습니다. 미성숙한 색일 뿐만 아니라, 몇몇 화가들이 여성의 알몸을 그리는 과정에서 코치널, 오커, 흰색을 섞으면서 성적 대상화의 색이 되어버렸습니다.
베이커 밀러 핑크
1970년대에 미국 도시는 약물의 유행과 치솟는 범죄율로 고초를 겪었습니다. 그래서 1979년, 한 교수가 시민의 공격성을 덜어낼 방법을 찾았다고 발표하자 온 나라가 귀를 기울였습니다. 비밀은 알렉산더 G. 샤우스가 <보완대체 정신의학>에서 발표한, 구역질 나게 밝은 핑크였습니다. 이후 샤우스는 많은 실험을 하였습니다. 먼저 젊은 남자 153명의 체력을 측정한 뒤 절반에게는 진한 파란색, 나머지 절반에게는 핑크색의 판지를 1분 동안 쳐다보라고 지시했습니다. 후자의 무리에서 두 명을 제외한 이들이 평균보다 체력이 약해졌습니다.
1979년 3월 1일, 미국 시애틀 소재 해군 형무소의 두 교도관인 진 베이커와 론 밀러가 감옥에 핑크색을 칠하고 효과를 살폈습니다. 1갤런의 순백색 수지 물감에 빨간색의 마감용 페인트 11 파인트를 정확하게 섞어 위장약 펩토 비스몰과 똑같은 색깔을 만든 뒤 감방의 벽, 천장, 철창에 칠했습니다. 베이커의 말에 따르면, 교도소 내 폭력은 ‘엄청난 문제’였지만 핑크색을 칠하고 156일 동안 단 한 건의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파랑 계열
서양은 파란색을 폄하해 왔습니다.. 구석기 및 신석기시대에는 빨간색, 검정색, 갈색이 인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빨간색, 검은색, 흰색의 삼색을 숭상했습니다. 특히, 로마인들에게 파란색은 야만을 상징했습니다.
변화의 물결이 들이닥친 시기는 12세기였습니다. 프랑스의 유력 귀족이자 고딕 건축의 선도적인 지지자였던 애보트 쉬제르는 신의 색이라며 파란색을 열렬히 신봉했습니다. 파란색은 고대 이집트, 힌두교, 북아프리카의 투아렉 족을 비롯한 많은 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슬픔을 상징했지만 동시에 특별한 위상도 차지했습니다. 많은 기업체나 조직이 신뢰를 심기 위해 상징이나 제복에 짙은 파란색을 쓰고 있습니다.
초록 계열
오늘날 녹색은 시골의 편안함과 환경친화적인 정치를 연상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투와 연관되었음에도 일반적으로는 평화로운 색으로 인식하며 종종 사치나 스타일과도 얽힙니다. 연한 청록색은 아르데코 운동에서 사랑받았고, 에메랄드는 2013년 팬톤의 ‘올해의 색’으로 선정되기도 하였습니다.
녹색 염료와 안료는 왜 널리 쓰이지 못했을까요? 파란색과 노란색의 혼색이 오랫동안 금기였기 때문입니다. 여러 세기 동안 녹색의 배합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물질을 섞는 것에 대한 오늘날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의 강한 반감도 존재했습니다. 당시에는 다른 원소를 수시로 섞는 연금술사를 믿지 않았으며, 명암으로 투시도 효과, 즉 깊이를 주지 않아 중세 미술의 색은 섞이지 않은 덩어리로 등장했습니다. 그 후로도 화가는 품질이 떨어지는 녹색 염료를 써야만 했습니다.
에메랄드
셰익스피어는 녹색과 질투의 관계를 규정한 장본인입니다. 1590년대 말에 쓴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는 ‘녹색 눈의 질투’를 언급했으며, 1603년 작품인 『오셀로』에서는 이아고를 ‘조롱하는 녹색 눈의 괴물/고기를 먹는다’고 표현했습니다.
에메랄드는 녹주석 일가의 귀하고 연약한 보석으로, 크로미움과 바나디움 같은 원소 소량 덕분에 녹색을 띱니다. 자연에 널린 색깔인 녹색이므로 휴식과 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믿은 로마인은 에메랄드를 빻아 비싼 안연고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네로 황제가 유난히 에메랄드를 좋아했습니다. 열심히 수집해 햇빛에 눈이 부시지 않도록 에메랄드로 선글라스를 만들어 끼고 검투사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옵니다.
1900년 <오즈의 마법사>를 쓴 L. 프랭크 바움은 에메랄드를 주인공과 친구들의 목적지인 도시의 이름 및 건물 마감재로 설정했습니다. 적어도 책의 도입부에서는 에메랄드 시가 마법적인 꿈의 실현을 의미했습니다.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다는 이유로 등장인물에 끌리는 곳이죠.
검정 계열
검은색만큼 광범위하고도 드넓은 색은 없습니다. 검은색은 패션과 조문의 색이면서 풍요부터 신성을 포함하여 장학금까지, 모든 것을 상징하는 색입니다. 따라서 검은색만 얽히면 매사가 언제나 복잡해집니다.
파리 좌안 바크 거리의 아방가르드 미술관인 마에 갤러리는 1946년, ‘검은색도 색이다’라는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미술학교에서는 정반대로 가르쳐왔으므로, 충격적인 선언으로 기획된 전시였습니다. 르누아르는 ‘자연은 색다운 색만 안다. 따라서 흰색과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흰색처럼 검은색도 빛의 표현, 정확하게는 부재의 표현입니다. 진짜 검은색은 어떤 빛도 반사하지 않으니, 모든 파장을 똑같이 반사하는 흰색의 정반대 상태인 것입니다.
2014년 영국에서 카본 나노튜브 기술로 만들어낸 반타블랙은 스펙트럼의 99.965퍼센트를 흡수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직접 보면 너무나도 까만 나머지 눈과 뇌를 속여, 깊이와 질감을 인식할 수 없는 검은색입니다. 검은색은 인류의 기록이 남아 있는 한 죽음의 낌새와 얽혀 왔는데, 인류는 이에 매료되는 만큼 염증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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