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요약/인문사회도서 요약

책 요약: 클레오파트라의 바늘 / 김경임 / 홍익출판사

모닥불 책읽기 2024. 10. 13.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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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의 일부를 요약한 글입니다. (참고 북코스모스)

문화유산과 법의 역사

  • 고대 법원칙: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법원칙은 현대의 관용과 용서의 개념과는 다르게 잔인한 형벌의 상징으로 여겨질 수 있다.
  • 법의 목적: 이러한 법원칙은 더 큰 복수를 금지하고 비슷한 보복을 허용함으로써 절제와 온정을 추구하는 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 함무라비 법전: 이 법전은 세계 최초의 법전으로, 모세의 십계명보다 약 300년 앞서 반포되었으며, 282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 비문 약탈 사건: 함무라비 법전 비문은 기원전 1158년에 엘람 왕국에 의해 약탈당하여 세계 최초의 약탈 문화재로 기록되었다.

함무라비 법전의 중요성

  • 법전의 역사적 가치: 함무라비 법전은 원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 최초의 법전으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법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 법전의 구성: 법전은 서문, 법 조문, 맺는말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문은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함무라비 왕의 기도문으로 시작된다.
  • 법 조문의 내용: 282개 조문은 민사, 형사, 경제, 행정, 가족, 의료 등 다양한 일상생활의 영역을 포괄하고 있다.
  • 후세에 남긴 유산: 함무라비 왕은 자신의 이름을 후세에 남기려는 염원을 기록하였으며, 그의 이름은 법을 선포한 제왕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약탈 문화재의 역사

  • 약탈의 상징성: 기념비 약탈은 적국에게 정복을 상징하고 본국 국민에게는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의미를 가진다.
  • 엘람 왕국의 약탈: 엘람 왕국의 왕 슈트르트나는 함무라비 법전 비문을 전리품으로 약탈하였으며, 이는 400km의 험악한 산악지대를 가로질러 이루어졌다.
  • 약탈의 정치적 의미: 약탈물은 왕의 전쟁 수행 능력과 다른 세계에 대한 지식을 증명하는 수단으로 국가의 권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 현대의 박물관과 약탈 문화재: 오늘날 유럽의 박물관들은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한 고대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이는 고대 문명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현실과 관련이 있다.

문화재 약탈의 정치적 의미

  • 19세기 제국주의: 19세기 초 유럽 제국은 비유럽 지역에서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고 문화재를 획득하는 것이 대유행이었다.
  • 프랑스의 발굴 노력: 프랑스는 이집트에서 발견한 로제타 석을 영국에 빼앗긴 후, 근동 지역에서 많은 발굴을 시도하였다.
  • 함무라비 법전의 발굴: 함무라비 법전은 프랑스 고고학자 자크 드 모르강의 지휘 아래 발굴되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문화재 소유권 논쟁: 함무라비 법전은 바빌로니아의 후예인 이라크의 문화재인지, 엘람 왕국의 후예인 이란의 것인지, 아니면 프랑스의 것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다.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의 역사

  •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의 가치: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는 한때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로, 793캐럿에서 186캐럿으로 줄어들었다.
  • 약탈의 역사: 이 다이아몬드는 1849년 영국 동인도 회사에 의해 약탈되었으며, 당시 인도에서 영국 여왕에게 양도되었다.
  • 저주와 전설: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는 소유한 자에게 불행을 가져온다는 전설이 있으며, 이를 소유한 왕들은 대부분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였다.
  • 현재의 소장 위치: 현재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는 런던 타워에 있는 보물의 방에 보관되어 있다.

영국 왕실과 코이누르

  • 영국 여왕의 소유: 빅토리아 여왕은 코이누르 다이아몬드를 소유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였으며, 이를 왕관에 장식하였다.
  • 반환 요청: 인도는 1947년에 코이누르 다이아몬드의 반환을 요청하였으나, 영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 소유권 논쟁: 영국은 코이누르가 펀자브 왕으로부터 정식으로 기증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법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근거가 된다.
  • 다양한 주장: 인도, 파키스탄, 이란 등 여러 국가가 코이누르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복잡한 국제적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

트로이 유물의 발굴

  • 트로이 전쟁의 배경: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왕자를 따르다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도망친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 슐리만의 발굴: 하인리히 슐리만은 트로이 유적지를 발굴하여 그 존재를 확인하였으며, 이는 유럽 사회에 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 발굴 유물의 가치: 슐리만은 금관, 금귀고리 등 9천여 점의 금붙이를 발견하였고, 이를 '프리아모스의 보물'로 명명하였다.
  • 문화재의 소유권 분쟁: 발굴된 유물은 독일의 베를린 제국 박물관에 소장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다.

트로이 유물의 소유권 논쟁

  • 소련의 문화재 약탈: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은 독일군에 의해 약탈당한 문화재를 가져갔으며, 이에는 트로이 유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 독일과 러시아의 갈등: 독일은 소련이 가져간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하고 있으나, 러시아는 이를 '전쟁 배상 성격'으로 간주하고 반환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 문화재의 민족적 소속: 트로이 유물은 독일의 문화유산이 아니며, 제국주의 시대에 약탈된 것으로 비윤리적인 문화재로 간주될 수 있다.
  • 국제적 논의: 트로이 유물의 반환 문제는 국제 사회에서 큰 논의의 주제가 되고 있으며, 이는 문화재 분쟁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 가능성이 있다.

헝가리 왕관의 반환 과정

  • 왕관의 발견: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군은 헝가리 왕실의 보물을 발견하였고, 이는 헝가리 왕관을 포함하고 있었다.
  • 왕관의 역사적 가치: 성스테픈 왕관은 헝가리의 국권과 왕권의 상징으로, 교황으로부터 하사 받은 역사적 유물이다.
  • 반환 협상: 미국 정부는 헝가리의 공산 정권이 존재하는 한 왕관을 반환하지 않겠다고 천명하였으나, 이후 협상이 진행되었다.
  • 법적 평가: 전시 문화재 보호를 규정한 국제 협약에 따르면, 점령국이 문화재를 반출하는 것은 위반이며, 반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몽유도원도의 역사와 가치

  • 작품의 역사적 배경: <몽유도원도>는 조선 전기 최고의 화가 안견이 그린 작품으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꿈을 담고 있다.
  • 작품의 가치: 이 그림은 한국 미술의 금자탑으로 평가받으며, 유교 사회의 정신세계를 반영한 대작이다.
  • 작품의 행방: 그림은 임진왜란 때 약탈당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 환수 운동: 최근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몽유도원도>의 환수에 힘쓰고 있으며, 이는 국민의 간절한 희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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